3-1. 시각 - 사진, 영상

                        3-1-1 DSLR의 대중화와 PF(Personal Fabricator)

                        3-1-2. 대중화 속도의 차이(디지털 카메라 vs. 디지털 캠코더)

                3-2. 청각 - 음악

                3-3. 예술과 종교( 디지털 / 아날로그의 형용사적 의미)             

                3-4. 지적 재산권

                3-5. 교육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미디어의 변화이다. 미디어의 출현은 감각능력이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뛰어 넘어 전달되고 재현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미디어는 오감을 한꺼번에 저장하고 전달하며 확산시킬 수 없었던 만큼, 대신 이것들을 분리해 각각 확장시켰다. 미디어 학자인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 즉 인간의 감각의 확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때의 미디어는 입의 확장으로서의 확성기, 귀의 확장으로서의 라디오, 눈의 확장으로서의 신문이나 책, 피부의 확장으로서의 옷, 발의 확장으로서의 자동차를 의미한다.1) 디지털 세상이 변한 이후, 이 오감 영역 중 입과 눈 그리고 귀의 영역은 이미 0과1의 디지털 신호로 분해되어 전달될 수 있어졌다. 아날로그 시대에 오감의 영역들을 나누어졌고, 이는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모노미디어로서 존재했다. 이동, 전달하기위해서 분리는 필수였다.2)

  각각의 오감영역이 전달됨이 성공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시각영역인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며, 청각영역인 소리를 전달했다. 나누어서만 볼 수 있던 것이 결합되고, 빠르게 옮겨저 완벽한 완성물을 만들어 내어 놓는다. 오감이 모두 중요했던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르게, 근대에 들어와 이성과 합리주의가 근대를 시각의 시대로 만들었다. 오감의 영역은 삶에서 쉽게 버리지 못하는 부분이었고, 분해와 융합이 가장 먼저 가능했던 문자, 사진의 영역을 시작으로 음악, 영상 같은 부분들이 디지털에 의해 전달된다. 오히려 쉽게 전달하기 어려운 오감영역인 촉각, 후각, 미각 같은 영역들은 아직 예전의 아날로그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디지털 기술이 대신하지 못하는 부분들에서 차가움을 느끼고, 부족하다는 인식을 갖게된다. 난해한 기술 영역 세 가지 중에서 촉각부분은 지금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부분인데, 의류에서 느껴지는 촉각보다는 마우스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촉각의 영역에서 손으로 직접 대상을 움직이는 터치 스크린 같은 영역으로의 발전이 초기 촉각 디지털화의 핵심이다.


  보통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대해 사용의 어려움이나 불편함 때문에, ‘차갑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기술진보를 이룬 시각영역보다 덜 디지털화된 부분에서 더 느껴지는 감정이기에 시각 기술보다는 촉각기술에서 더 불편하고, 차갑다고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더 차갑고 불편하다는 것은, 디지털 기술로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촉각기술보다는 후각과 미각 기술에 대해 더 냉소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며, 자칫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향수로 이해될 수 있다. 필름 사진기가 DSLR보다 좋은 이유는 개인적인 향수 때문이지, 감각을 재생하는 것의 디지털의 부족함 때문은 아니다.


 

3-1 시각 - 사진과 영상

        3-1-1 DSLR의 대중화와 PF(Personal Fabricator)


  “친한 친구가 대학교 1학년 때 DSLR을 구입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120만원이란다. 2학년 때 또다른 친구 2명이 DSLR을 구입했다. 한 명은 가격이 내려간 90만원짜리 Sony제품으로, 또 한 명은 165만원짜리 Nikon제품으로. 사실 가격을 들을 때마다 움찔 움찔 놀랐다. 친한 사이라 가끔 내게 빌려주었지만 사진기를 다루는 순간 순간 행여라도 잘못될까 심장이 왔다갔다 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비싼 카메라가 중산층 가정의 과외 하나 뛰는 평범한 대학교 1학년생이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차지 할 수 있다니. 은근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서울에 비해 광주에서는 단순히 가격 측면만 보더라도 그 정도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친구들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 2008년 2월 26일 정수빈 발제문에서

  

  DSLR(digital single-lens reflex)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말하는데 기존에 있던 SLR, 필름 일안 반사식 카메라와 거의 동일한 광학적, 기계적 원리로 동작하는 디지털 카메라이다. 차이점은 필름 대신 CCD 혹은 CMOS 이미지 센서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진작가들이 들고 다니는 무게가 있어 보이는 카메라가 대부분 DSLR이다. 기능상의 세부적인 면을 따질만한 수준이 못된다.


사진은 무엇인가? -> 회화는 무엇인가? -> 예술은 무엇인가?


  친구들이 그 비싼 카메라를 사는 것을 보면서, 사진학 강의를 들으면서 계속 질문했던 것은 ‘사진의 의미’였다. 그 의미는 그 사진을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얻게 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에게 사진은 대부분 순간적으로 포착한 정보를 될 수 있으면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즉, 정보의 제공이다. 특정 브랜드의 옷을 입은 모델을 찍는 사진작가에게 사진은 옷이 되도록 잘 팔리길 바라는 상업적인 목적일 것이다. 스티커 사진을 찍고 여행을 가서 풍경 속의 자신을 찍고 찍히는 사람들에게 사진은 기억의 보관, 즉 추억일 것이다. 핸드폰으로 자기 자신을 되도록 예쁘게 찍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사진은 일종의 자기만족의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사진은 정보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정보의 노출은 개인보다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정부와 기업에 의해 주도되었고, 대중화가 되어감에 따라 사진 제작은 대중의 것이 되었다. 심지어, Analog Camera가 대중화 되었던 것과 같이, Digital Camera3)는 DSLR과 같이 기술 개발과 대중화라는 단계를 거쳤으며, DSLR을 통해 사진을 찍고있는 나는 한명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사진’이라는 기술은 르네상스 시대의 소수만이 가능했던 회화 기술이 사진예술로 변화되었고, 개인에게 다시금 시각영역의 회복을 가져오게 되었다.

Personal Fabricator로서 기능하는 DSLR같은 기기들은 디지털 제작도구와 함께 새로운 사진출력물까지 제공한다. 역사의 과정을 통해 장인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오감영역의 분화와 재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개인 제작(PF)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 MIT 닐 거센펠트


르네상스 시대 장인(Artisan)은 원래 예술가를 포함하던 개념이었다. 예술가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장인(Artisan)과 예술가(Artist)로 분화되었고, 장인은 20년동안 2명이 도제를 기르기 위해 제작, 예술, 교육을 모두 담당하던 역할 또한 분화되게 되었다. 예술가가 된 미술가들과 음악가들은 르네상스 이후, 다양한 문화 사조를 만들며, 문화 부흥을 이끌었으며, 중세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던 교육은 근대교육 시스템으로 변화 되면서, 다양한 학문 분야들을 만들어 냈다. 즉 인간의 최근 몇 세기 동안은 예술과 교육의 발달을 통한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르네상스 시대 장인이 담당하던 제작, 예술, 교육 중에서 가장 느리게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작이다. DSLR같은 매체를 통해 본다면 예술은 이미 생활 깊이 대중에게까지 돌려졌다. 교육또한 고등 교육의 시스템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 또한 개인의 문제로 변화 되었다. 사진같은 매체의 발달을 보더라도 “사진 현상소에서 제작해주는 사진”이란 의미에서 누구나 칼라 프린터를 통해서 뽑아낼 수 있는 시대는 즉 사진 제작의 대중성을 의미한다. MIT의 닐 거센펠트 교수는 자신의 Fab Lab의 실험 사례들을 통해, 자전거 혹은 커다란 집 같은 구조 또한 개인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4) 이는 또한 예술가들만이 갖게 되었던 Authorship 또한 대중화됨을 함의한다. 이는 우리가 생산자가 소비를 결정하는 프로슈머 보다 더욱 생산 자체가 대중화 되어 있는 개념으로, 언제든 소비자는 생산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즉 시각영역은 디지털화를 거쳐 개인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는 아날로그 필름의 출력물을 보관하는 사용자의 행동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요즘은 컴퓨터에 직접 보관을 하거나, 혹은 전자 앨범을 통해 더욱 더 실감있게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3-1-2. 대중화 속도의 차이(디지털 카메라 vs. 디지털 캠코더)


 

사진기의 대중화 그리고 사진의 일상화를 보면서 언뜻 TV와 컴퓨터가 떠오른다. TV의 자리를 컴퓨터가 서서히 대신해가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집에서 굳이 그 사람의 기호가 TV을 중심에 두지 않는 이상, TV는 따로 찾기 힘들다. 사진기와 비디오 카메라는 어떠한가? 사진기에서 발전시켜 나온 캠코더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TV의 자리를 조금씩 채우는 것과 같은 모습을 띄지 못한다. 더불어 인터넷의 등장이 ‘텔레비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TV는 가정집에 거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으며 인터넷의 기능은 TV의 기능을 옮겨오려는 노력 즉, 기준을 TV 중심으로 암묵적으로 설정하면서 내용의 변형이나 확장을 시도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캠코더는 일종의 발명품으로서의 인식은 이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점점 더 방송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발전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중화 속도는 문화와 사용자의 문해력에 맞추어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어 간다.


  첫 번째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용이성 혹은 접근성이다.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그 기계에 접근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느냐이다. 사진기에는 물론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여러 가지 기능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는 ‘셔터 누르기’라는 단순한 작업만 알아도 사진기를 사용할 수 있다. 더불어 크기도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지면서 사진기와 대중은 접촉이 빈번해지게 된다. 반면 캠코더의 경우는 평상시에 이용하기에 무게에 부담을 느낄 수 있으며 기능을 이용하는데 있어 일종의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이유는 이용목적이다. TV와 컴퓨터는 정보의 공유가 대부분 이루어진다. 사진기와 캠코더는 그 목적이 기억의 보관 혹은 공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캠코더는 앞서 언급한 접근성과 용이성의 문제로 인해서 점점 일상적인 영역보다는 전문적 영역으로 사용이 편중되면서 감수성을 자극하는 개인적 기억의 공유보다는 정보의 보관과 보급의 측면에서 더욱 치중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생산과 소비의 구분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TV의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 힘들다. 물론 시청자 의견이나 참여와 같이 간접적인 생산은 이루어지지만 직접적으로 생산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인터넷의 경우 역시 인터넷이라는 장을 생산자가 제공해주는 여건 하에서 소비자의 참여와 네트워크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진의 경우 그 생산과 소비의 구분이 점점 불명확해지고 있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적인 생산자 이외에도 아마추어 작가나 싸이월드를 통한 생산은 생산이라는 과정을 의식하지 못한 채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3-2.청각 - 음악

아직 개인발제를 통해 자세한 연결점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우리는 저작권 문제와 연결된 해결되지 않는 불법음원시장에 대한 국내의 사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저작권의 세태와 새로운 문화 창조자에 대한 기반이 없음을 확인한다.


  음악 시장이 음반 산업에서 음원 산업으로 넘어간지 오래고, 2007년 인류학 수업의 초빙강연자였던 MTV의 한 PD는 자신의 강연에서 이미 음원시장이 음반 시장의 매출 규모를 5배 이상 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알고 즐기는 음악은 과연 무엇이길래, 음악이란 것에도 디지털, 아날로그라는 구분은 끊임없는지 궁금해진다.


  음악을 재생하는 매체 방식이 틀려지는 문제가 첫 번째 이다. 음원자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압축 할 수 있으며, 처음 CD에 wav파일을 굽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용량으로 우리는 노래를 전송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인터넷 파일을 연결해 들을 수 있는 오르골은, 인터넷이 어디서든 가능해진 지금, 굳이 음원을 소유하지 않아도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음악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아날로그와 디지털 적인 감수성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며, 그에 대한 해결의 문제에는 분명히 Copyright와 Copyleft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웬만해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미 5년을 넘어서는 문화적 구조를 형성하는 듯 하고, 그 저작권을 주장하는 가수들은 왠지모를 불편함까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콘서트는 가서 돈주고 볼 만큼 아깝지 않은데, 음반을 사는 것은 왜이리 아깝지?"


  가수들 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기는 소속사와 광고 업체들 때문일 수도 있고, 저작권에 대한 익숙함을 역사적으로 학습하지 못한 국민성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쪽에 요즘 동의하는 중이다. CCK운동을 하고 계신 윤종수 판사님의 강연을 들어본다면, 가수들의 제몫 챙기기 보다는 후자쪽에 나도 의견을 동의한다. 한편으로는 몇몇 가수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로직”5)의 방향으로 음악을 되돌아 본다면, 음악은 사실 원초적인 UCC =PCC의 형태였다. 전문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다른 사람보다 음악을 좀 더 잘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그 외의 다수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창작과 제작을 했다. 이는 산업화 시대와 함께, 음원을 녹음할 수 있는 에디슨의 발명을 통해서, 음반의 대량생산이라는 무한한 금전적 가치를 창출했고,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발명한 매체는 박물관에 존재해 있다.


  음원과 저작권 문제를 벗어나 과거의 것에 대한 우리의 향수에 관한 이야기도 존재한다.

우리는 엠피 쓰리로도 옛 추억의 노래를 들으면, 과거의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면서 아날로그적인 노래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부단 매체로서의 특징 뿐만 아니라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아날로그라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란 의문을 던져본다.


  최신의 원더걸즈와 소녀시대 빅뱅의 노래도 좋지만 김건모의 노래를 들으면 옛 생각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아마도 테이프 음질의 약간의 둔탁한 베이스 소리와 티비에서 나오는 지직거리는 마이크 소리가 친숙했을 수 있다. 또한 김건모 앨범을 사기 위해 단돈 6천원이라도 내고 샀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매체의 특징과 저작권 인정해 주는 가치관 아래, 과거의 향수까지는 느끼는 과정에서 건모형의 노래가 더욱 멋졌다.

 -2007년 12월 27일 한운장 쪽글을 통해

3-3. 예술과 종교


깊은 영혼의 소통, 내면에서 우러난 진심이 전달되는 사회는 과거형으로만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가져다 준 존재의 독립성과 주체성은 현대인이 옛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판단하기 좋은 근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이전보다 훨씬 엄혹한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명백한 틈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웨이브는 그러한 틈을 어떻게 하면 채워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발전상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좀 더 새로운 철학과 가치가 반영된 ‘관계의 경제’를 구축해 나가는 사회상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와 같은 고민을 담보하고 있는 운동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전면에 게재되었던 동양화가 서세옥 선생의 ‘사람들’ 연작을 살펴보면서 아날로그가 나타내는 이상을 최고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기존의 성과 지향적이고 속도지향적인 디지털이 가진, 여러 ‘틈’을 이제는 메워보자.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손이라도 잡는’ 단순한 조치가 얼마나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밝게 만드는가. 앞서 설명했듯 우리의 고민과 행동은 디지털을 부정하는 근본주의(Fundermentalism)를 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이라는 그릇에 아날로그적인 물을 담거나 아날로그적인 캔버스에 디지털적인 색채를 가미하는 방식의 융합적 발전을 가정하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너무나도 대립적’이라는 화성론이 아닌, ‘두 가지의 명제조차도 상호 소통할 수 있다’는 수성론의 철학인 셈이다. 이는 이어령씨가 밝힌 바 있는 “디지로그(Digilog)의 개념과도 일맥 상통한다.

  

대만 영화 ‘경과’(The Passage, 광주국제영화제 수상작)는, ‘0을 0으로만 보고, 1을 1로만 보는’ 이분법, 기계적인 발상을 벗어나, 500년 전의 시인이 쓴 서첩(書帖)에서 현대인이 상호 공감할 수 있는 공동인지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소통과 교류의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호소를 하고 있다.


  삶과 종교는 그 이전의 과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형용사로서 “아날로그적”인 이야기이다. 아날로그적인 따뜻함은 현재의 디지털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디지털을 불연속적인 것, 아날로그를 연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오니스트, 이슬람 근본주의자 같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 종교는 더 아날로그적인 사고, 아날로그적인 생활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깊이 있는 만남과 소통을 경험하면서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곤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와 비교해 종교 안에서의 만남은 상대적으로 아날로그적인 향기가 많이 묻어난다. 더불어 대량생산, 대량복제로 인해 아우라가 실종되는 위기의 시대에도 MR이 아닌 악기를 직접 연주하면서 부르는 성가대의 라이브가 ‘당연하게’ 살아남아 있는 곳이다. 제사나 나름의 의식을 통해 지난 것들에 대해 추모하고 존중하며 더불어 기원하는 성격을 간직하기에 종교는 경건성, 신성성과 불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가장 디지털화되지 않은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종교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 기독교교회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예배시간의 설교를 생중계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유교적인 전통과 디지털의 융합이랄 수 있는 인터넷 원격 제사, 사이버 추모관 등 독특하고 신선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의 그릇에 종교의 기본적인 모습, 아날로그의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부분적으로 융합해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절에서 아침 예불을 드리는 등 자신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종교를 위해 기꺼이 삶의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비생산적인 시간 소비’를 왜 사람들은 계속 원하고, 기꺼이 감당하는 것일까?


  우선 ‘가(家)의 특성’으로서 도시화, 산업화 시대에서 촌락공동체의 해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유사 가족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종교 공동체는, 영성의 충전과 더불어, 세대를 넘어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서, 일종의 사회문화적인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온누리 교회의 ‘엠투공동체’는 젊은 학생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밤새 더러워진 홍대를 치우고 라이브클럽에서 일요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면서 지역 주민에게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소규모 단체이다. 그들은 CCM을 통해서 찬양을 하고, 젊은 아이들의 감성에 호소하면서 300명 단위의 커뮤니티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이라는 개인적 휴식의 시간에 자신들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가족을 기초로 하는 지역적 공동체의 성격을 보여준다.

 

  더불어 ‘비생산적인 시간 소비’는 회고와 반성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는 한 달 동안 이 공동체에 참여하여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노동을 하는 등 수도사의 생활방식을 경험하는 공동체이다. ‘Taize 공동체’이외에 우리나라의 불교 신자들 가운데는 일정기간 그들이 말하는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명상과 수련을 지속하면서 ‘단절’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아날로그 시즌 1에서 실험했던 ‘디지털 기기 안쓰기’와 같은 의도적인 단절과 부분적으로 상통하는 경우로서 디지털에 대한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아날로그가 디지털의 우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수도승들의 아날로그적 삶은 이들이 디지털의 이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입산수행을 하는 선승들이 산악인용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것은, 아날로그를 유지하기 위해 얼리 어댑터가 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산중 법회를 인터넷이나 케이블 TV를 통해 방송하면서 종교기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기부금이나 헌금 유도와 같은 홍보전략을 꾀하는 것 또한 ‘아날로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디지털적인 방편 중 하나다. 오늘날 디지털 사회를 주도해나가는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인 이데올로기, 종교에 심취해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선물 투자 전문가 출신인 헨리 폴슨 전 골드만 삭스 회장(현재 미 재무장관)은 ‘나와 자연의 일체감과 통일’을 중시하는 종파인 크리스챤 사이언스의 독실한 신자다. 유대 공동체의 밀교(密敎)이자 입실수도법(入室修道法)인 카발라에 심취한 마돈나는 원래 케이블 TV 음악 방송의 최대 수혜자였다. 사이언톨로지 신자가 된 배우 톰 크루즈 역시도 아날로그 이데올로기에 푹 빠진 디지털 사회의 리더다.

    


3-4. 교육


  초등학교에서부터 같은 방식의 교육을 받는 시스템과 교육에 있어서 일관된 정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일부 지역 고등학교에서는 60, 70년대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때려서 학습하는 군대식 스파르타 학습을 유지하고 있다. MIT 네그로폰테 교수는 한국의 교육은 극단적 가치를 주입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6) 어쩌면 극단적 교육의 20년의 결과가 찌질한 IT 문화를 양산한다.


디지털 사회속에 사는 개인은 첫번째로 삶의 속도는 빠르게 느낀다. 자신 이외에 가족들, 친구들을 돌볼 시간조차 모자라는 세상이며, 시간 관리와 업무 관리하는 수양서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현재 이곳의 인간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도 사라져 있는 상황이다. 인간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일이 많아지면 자연히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두 번째로 배우는 방법이 달라졌다. 학교 공교육으로 유지되던 국내 근대교육은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제도가 바뀌어지면서 수많은 학원들과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 냈으며, 개인의 성공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많은 학생들은 입소문을 탄 강사의 인강7)을 통해 공부한다. 정보를 찾기 위해 포탈을 찾기 보다는 몇몇 블로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으며, MIT에서는 학교에서 만들어 지는 수업을 Open Course Ware(OCW)8)로 올려 세계적인 석학의 수업의 커리큘럼을 공개하고 있다. 또한 "Unlocking Knowledge, Empowering Mind"란 전면 문구로, 개방화된 지식의 흐름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Network Developer 중에 한명인 카이스트 전길남 박사는 이런 Open Class의 형태는 전세계의 최고의 석학만을 남겨두는 기이한 현상까지 만들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Open Culture of Internet”을 표방하는 현재의 Web2.0의 트렌드 속에 많은 지식들이 공개되고,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게임과 여행과 친구들과의 놀이를 통해서 학습을 해가는 탈근대적인 학생들에게 근대적 방식의 학습을 요구한다.



3-5. 지적 재산권


  기술 기반의 빠른 디지털 영역의 확장과 매체들의 따뜻한 아날로그 감수성 회복의 노력은디지털 정보사회 및 매체에 관한 사회적 이슈 때문에 매우 많이 언급된다. Copyleft와 Copylight라는 상당히 오래된 정보 공유 분야의 법적 분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해 낸 ‘아날로그’는 소통과 교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자유재’에 속하지만, 그러한 요소들을 시장화하고 상품화하는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경제재’적인 측면도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것이다.


  90년대 초반부터 2000 ,2001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디지털이 정보공유와 자유도를 높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디지털이 지식의 공산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이상적인 기대까지 공공연히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벅스뮤직이나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 컨텐츠 정보공유 사이트가 소유권 문제로 인한 법적 분쟁에 휘말리면서, 디지털은 더 이상 ‘공유재’로서의 기능만 보유하는 매체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아날로그적인 정보, 아날로그+디지털 매체 등도 ‘사유냐 공유냐’의 문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본다.

        

3-5-2. 지적 재산권


   오늘날 지적재산권, 특허권 체계가 지나치게 제공자중심주의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 두려고 한다. 2007년 특허법원에서 낸 통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출원되는 특허들 가운데 실제 상용화되는 비율이 5%가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과다 특허, 과다 지적 재산권 출원’의 주도자가 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국내 대기업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 정부의 20년 특허, 지적 재산권 연한은 정보의 유용성과 소통 가능성 여부가 빨리 점쳐지는 오늘날의 속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년은 과거 배타적 지적 소유권이 처음으로 인정되었던 베네치아의 전통(Venetian tradition)에 기반한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이스터가 두 명의 도제를 배출해 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간이 20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정보 재산권 체계는 발신자 중심주의적인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발신자, 수신자의 ‘서로 주체성’과 ‘소통성’을 더욱 진작함과 동시에, 보다 더 자유로운 Authorship, 그리고 정보 생산자 간의 자유로운 소통 체계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현재 좀 더 자유롭고 이로운 정보의 소통을 도모하고 있는 운동인 CC(Creative Commons)가 그것이다. 자신이 직접 생산해 낸 정보의 개방도를 주체적으로 설정함과 동시에, 비영리 목적, 영리목적 등의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선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보의 소유권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지적 재산권의 본의인 ‘계속적 혁신’을 위한 ‘독점’도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CC다. ‘모질라 재단’의 파이어폭스는 MS의 IE 끼워 팔기에 대조되는 프리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이자, 소비자들이 기능 개선과 새로운 기능 개발을 유도할 수 있는 커뮤니티제도가 마련된 ‘대안적인 컨텐츠’다. 스페인에서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정보공유기인 폰(Fon)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정보통신망에 접속하여 자신의 운영체제와 인터넷, 그리고 커뮤니티 소통까지 통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매체이다. ‘폰’을 사용하는 매체이용자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도 준비 중에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하나로 묶어 Quasi-Private Sector라고 명명하려고 한다. 일찍이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가 ‘공유지의 비극’에 대해 논의하면서 사유화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한편 효용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경제학적 처방에 더하여 각각의 ‘사유화된’ 정보나 매체가 생산자들 간에 ‘선의의 교류’가 일어나게 도와줌으로써, 하나의 ‘정보 가족’까지 형성하는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매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 경제학의 ‘중심’으로 불리는 시카고 학파가 개척한 영역이 있다. 바로 ‘법경제학’이라는 학문이다. 이 분야의 학자들은 법률이나 제도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내의 여러 행위들을 경제학적으로 통찰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제도가 갖는 ‘당위’의 명제 내지는 ‘정의실현’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행위 명제나 조치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실질적 효익을 발휘하는지 치밀하게 계산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면 ‘법경제’적인 관점에서 네그로폰테가 도시(圖示)한 디지털 공간(‘디지털이다’에서의)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용으로 인한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진 공간이라고 본다.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미니홈피, 블로그, 각종 검색 포탈의 뉴스나 게시판과 같은 것들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화들이다.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큰 통신망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0’이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정보를 쉽게 접하고, 쉽게 판단하고, 또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쉽게 표현도 할 수 있게’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IT 강국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정보가 쉽게 공유되고 의견 개진이 용이해진, ‘편한 세상’이라는 평가가 우세할 듯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여론이 만만치 않다. 우선 법경제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터넷 공간은 ‘공유지’다. 저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을 불러일으킨 공유지 말이다. 물론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거나 유료 PDF 연구 논문같은 것을 다운받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터넷 공간은 ‘월세나 전세가 없는 셋방’처럼 무료로 대여되고 있다. 취득하는 데에 지불한 원가가 0이기 때문에(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시간이나 다른 소통 매체의 사용 가능성과 같은 기회비용의 문제도 따져보아야 겠으나) 사람들에게는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장소다. 그러한 공간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중상비방, 거짓 여론, 윤리적인 문제를 의식하지 않는 정보 도용이나 크래킹, 해킹과 같은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는 인지를 불러일으키기 어렵기에, ‘물쓰듯이 이용하고, 남발하는 것’이 인터넷 공간에서의 생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는 거의 공유재에 가깝다. 사유화되지 않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보존 책임을 덜 체감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국립공원의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관광을 할 수 있었지만, 아름다운 경관은 거의 파괴되어버린 경우와 동일한 현상을 낳는 것이다. 쓰레기 정보와 무법자들이 횡행하고 있는 인터넷 공간은 이제 네그로폰테가 이야기했던 이상적이고 대안적인 세계에 머무를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빙 디지털!’을 외치며 모든 것이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을 지속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디지털 매체, 인터넷을 이대로 두어도 창출되는 계속사업이익(Going-concern Profit)은 있으리라고 본다. 자사 사이트 안에서의 정보 이용을 자유롭게 하는 대신에 기업에서 수주한 광고 사업이나 홍보 사업으로 무한대의 이익을 누리고 있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넷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적인 단면에 불과하다. 수요자들은 이미 심각하게 병들어버리고,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슬럼 지대에 싫증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종종 유럽이나 미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소 철학적인 성향의 극단적 아날로그 지향 운동이 그와 같은 ‘넷’에 대한 이용자들의 배신감을 반영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나는 여기서 로널드 코즈가 내놓은 사유화 방안을 대안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웹서비스나 인터넷 공간 사용료를 유료화하는 것은 이미 ‘극단적 공유재’가 된 인터넷의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유사 사유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블로그나 미니홈피 같은 것들의 유효성, 실효성을 판단해서 자유롭게(굳이 금전이 아니더라도) 거래하도록 하거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은 공간과 같은 것들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보상'을 함으로 유사-사유화 체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과연 바람직하고도 좋은 행위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측정하고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가 걸려 있지만,무한대의 공유재로 방치하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난동을 피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 사유화되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의 소유주가 철저하게 관리하려는 유인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멋진 홈페이지 거래소‘라든지 창의적이면서도 올바르게 인터넷을 사용한 네티즌에게 각 사회, 정보업체 등에서 포상하는 제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긍정적인 외부효과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 2008년 1월 11일 천영준 발제문


  지식생산시대에 과연 제대로 된 지식을 생산하고 있는 것일까? CC와 관련된 자료를 통해서 성급하게, 한국의 정보의 질이 떨어졌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2006년과 2007년 한국의 UCC광풍이 몰아간 이후에 2008년 UCC라는 단어는 대중과 언론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단어가 되었다. 모든 이슈와 트렌드가 빠르게 빠르게 변하는 공간은 과연 제대로된 지식생산을 하며, 그런 지식·문화에 대한 비평을 제대로 쏟아낼 수 있을까? 빠른 문화 변동은 매우 독특한 문화9)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이는 근대적 시스템을 연습하기도 전에 탈근대의 시대의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는 없다.


1) Marshall McLuhan, [Understanding Media :  The Extension of Man],1964.1994/박정규 역,[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북


2) 정진홍,[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106-108,21세기북스


3) 90 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소비를 일으킨 카메라들은 500만화소 이하의 “똑딱이”라고 하는 Analog Camera보다 화소가 떨어지는 카메라들이 대부분이었으며, DSLR같은 카메라는 쉽게 대중화 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4) 닐 거센펠트, 팹(Fab)


5) 페이지 6 “디지털 개발 로직”  “아날로그 로직” 참고.


6) 「디 지털이다.(Being Digital)」의 서문에서 그는 밝히고 있다. “전해들은 것이기도 하고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경험이긴 하지만 핚국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바로 당신들의 교육체제,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중점을 두었던 바로 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당신 들은 교육 분야에서 극히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학교 교육의 길 대신 주입식 암기교육에 극단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8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7) 인 강 = “인터넷 강의”의 줄임말로서, 대부분의 고등학생과 대부분의 대학생들중, 수능, 공무원시험, 3대고시, 자격증시험, 영어시험 등 시험과 관련된 대부분의 강의들은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팔리고 있다. 어떤 선생님들은 연애인 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있다.


8) MIT Open Course Ware <http://ocw.mit.edu/OcwWeb/web/home/home/index.htm>


9) 미국와 유럽에서는 이런 아시아의 문화를 "Wired Asia"라고 표현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운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