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날로그의 소통적 성격과 감성적인 요소를 정말 사랑했던 나는, 역설적으로 디지털 사회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는 IT 컨설팅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대학원에 설치된 산업정보시스템 연구실에서, '기업 정보화 방법론'과 'U city 구축 및 구조 개발 사업', 'Green IT'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을 하는 이 공간에서 나는 한참 IT 경영의 기초를 배우고 있는 막내 인턴 연구원이다.
작년 여름까지 열심히 나의 신조로 삼아 왔던 아날로그를, 어떻게 되살려 볼까. 지금 내 분야에서 갖고 있는여러가지 고민들(네트워크 경제, IT 자원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IT 투자는 일관성이 없다는 점 등)과는 어떤 합치점이 있을까. 나는 그걸 다시 '상호작용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가지고 갈 듯 하다.
운장 형이 정말 희망에 가득 찬 모습으로 제안했던, 닐 거센펠트(MIT 미디어랩 주임교수)의 'Fab'을 일독한 후에, 전망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과거 매체에 대한 사용성과 유용성의 가치를 초월해서 '감성'이 가장 중요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의 시기에는, 유저가 최소한의 인간적 정체성을 프로덕트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나 조치가 필요한 것일까.
정리되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다. IT 사회의 심부에서 다시 아날로그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Analog Wave
"불편한 것이 가장 편한 것이다."
10월 1일 부터 다음주 일요일까지 전화기를 거의 쓰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전화 때문에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화를 잘 안 받거나 하는 심술통지죠. 일이 바빠질 때,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반드시 필요한 요물이긴 하지만요.. 한 달간 또는 일주일 간 혼자 여행을 하면 크게 전화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를 걱정하는 것은 부모님, 형, 누나 현재의 여친 가까운 친구들 정도겠죠. 저보다 더 저를 걱정해 줘서 감사하긴 하죠.
10월 2일
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핸드폰에 필요한 번호들을 다리어리로 옮겨 적었습니다. 가족들, 친구들, 대학교 선후배, 동기들, 군대 동기 및 선후임들, 학교 동아리, 소모임, 등등을 옮겨 적었더니 큰 포스트 잇으로 6장 정도 나오더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은 되어 있으면서 전화를 하지 않는 사이는 의외로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그런 사람들은 옮겨 적으면서 빼거나 지웠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추석때 전화한번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 나에게 그런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옮겨 적었죠. 자신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정말 내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10월 4일 수요일 전화기 없어 - 전화기가 없으면 편하다.
사실 전화하는 건 미국에 있는 여자 친구를 제외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향 집 인터넷은 끊어나서 자연스레 인터넷도 되지 않는다. 가족들과의 추석 행사와 친구들과의 친목 술자리에 가고플 뿐이다. 아마도 제대로 인류학 프로젝트를 몸소 진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집 전화를 하면 이상하게 다들 잘 받지 않는다. 자신의 핸드폰에 우리집 번호가 적혀있을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어릴때 부터 사겨온 부랄 친구 녀석은 우리집 뒷번호인 6700을 알아보고 금새 전화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안부 차 집전화로 전화했는데 받지 않고 "누구세요??"로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 그만큼 핸드폰은 나를 대신한다. 핸드폰 번호가 곧 나인 것이다. 핸드폰은 수단임을 벗어나서 내 행세를 하고 있다. 또 하나 신기한 점은 내가 전화를 안 쓴다고 하면 화를 내는 친구들도 있다. 왜 화를 낼까??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약속에 나가기 전 대충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몇시에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신중히 하고, 나 스스로도 늦지 않으려고 미리 나가게 되는 좋은 점이 있다.
10월 6일 금요일(추석) - 민족 대이동의 틈에 끼어
서울 생활은 이미 오래 했지만, 민족 대이동의 고통은 처음으로 맛 보았다. 7시간 동안 차를 탄것은 고통중에 고통이었다. 휴~~ 형이 운전하느라 고생해서 미안했다. 집에 내려갈 때 내가 운전해서 생색낸 것이 그래도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이 시간에 내가 운전하고 있을 생각하니 무릎이 다시 아파오는 듯 했다. 다음 명절이 심히 걱정되긴 한다. 고향을 옮겨다 이쪽에다 가져다 놓고 싶은 심정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갔던 만큼 정신없이 즐거웠던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일기는 거의 초딩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핸드폰을 내가 사용 안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패턴돠 사람들의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핸드폰을 사용하는 아주 단순한 행동을 통해서 나 스스로 신중해지고, 새로운 점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원래 전화하면 전화도 잘 안 받는 나지만, 스스로 더 생활에 신중을 가하고 전화번호에 내가 묻히지 않게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06년 “아날로그를 생각하다” 활동 소책자에서
이런 활동들은 디지털을 따뜻하게 생각하기 이전의 중간 세대들이 겪는 일상일지 모른다. 개인의 삶에 변화를 끼치기 시작하는 디지털 기술들은 어느새 삶의 구조를 바꾸어놓았다. 개인의 구조의 변화는 이어서 사회구조의 변화와 우리가 공유하고, 결정하는 문화 요소들의 형태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이런 변화되는 사회 구조속에서 대처하는 개인적 삶의 모습이다. 어떤이들은 빠르게 적응을 하며, 혹은 전통적인 것을 고수한다. 적응의 문제를 벗어나 옳고 그름의 문제로 확대시키기도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오감영역을 되돌려주기 위한 디지털의 노력을 틀리다고 할 수 없다.
2006년 UCC열풍은 마치 Web2.0의 선풍적인 도입인듯한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모두들 사용자 중심의 컨텐츠로 마치 한국의 인터넷이 재구성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UCC는 단지 마케팅의 소재였을뿐 2007년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는 UCC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은 사용자 중심의 국내 웹 컨텐츠 시장을 반증하는 크레이티브 커먼즈(CC)전도사인 윤종수 판사님이 이야기하는 정보이다.
총 인구수를 생각하지 않고, 국가별로, CC를 도입한 시기에 따른 저작물의 양이다. 세로축은 로그 값으로 나와 있는 것이므로, 그래프에서 보여지는 직선 보다 훨씬더 휘어진 로그 함수의 형태이다. (the vertical axis is in log scale). 100만개 이상의 숫자를 보여주고 있는 Spain과 이 도표 자체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 USA의 숫자가 주목된다. 1000만개 이상 혹은 1억개 사이에 미국이 존재할 수 있다. 중국은 도입시기가 06년 3월로 되어 있는 것에 대비해 매우 많은 CC를 설정한 저작물들의 숫자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 자료는 절대 수치를 인구 구성비로 나눈 수치이다. Capita는 머리라는 명칭의 복수형태로서 총 인구수 대비 저작물의 개수로 이해된다. 역시 세로축은 로그값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China의 인구당 저작물의 수가 뚝 떨어져 있는 사실을 통해 이해하면 쉽다. 여전히 S.Koera와 Spain은 인구당 CC저작물의 숫자에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숫자를 보여준다. 위의 두 가지 자료만 가지고 단편적으로 해석한다면, UCC강대국이라고 이야기하는 우리나라의 Open Culture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할 수 있다. 여기서 Spain의 저작물 수가 많은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될만한 정보를 보자면, Spain은 Fon이라는 무선 공유기가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있는데, 보통 우리나라는 KT같은 커다란 기간통신망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을 연결하고, 무선 인터넷을 사용한다. 이와는 다르게 자신의 집, 회사에 연결되어 있는 Fon이라는 무선 공유기는 아이디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데, 같은 무선 공유기를 쓰는 Fon 사용자는 어디서는 이 공유기에 접속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무선 공유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속도가 느려진다는 이유로 무선 공유보안에 막혀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자료는 1.2.자료의 가로축이 도입시기로 나타났던 것을 CC저작권의 자유도 설정에 따른 점수로 나누어 그 점수 대비와 1000명당 저작물의 숫자로 그래프를 나타냈다. 각 나라가 원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국내법 안에 CC가 실제 개시되어 있는 절대 숫자를 의미함. 그리고 가로축에서 왼쪽으로 갈수록 자유도가 떨어짐. 그리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자유도가 높아짐(relative restrictiveness of the licensing based on mixed score).
그리고 다른 기하학 모양의 둥그스름한 커다란 원들은 Asia(gray), Europe(deep gray), South America(line)의 분류를 나눈 것이며 아시아가 가장 왼쪽에 분포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나 S.Korea와 Taiwan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본다면, 국내에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UCC Marketing이 국내 시장에서는 매우 쓸모없을 수 있음을 증명해주는 사실일 수 있다. UCC마케팅은 Web2.0의 개념에서 자발적이며, 아래로부터 사용자가 올리는 영상, 음악 중심의 문화 Contents정도로 알고 있는데, 만일 이것을 올리는 이유가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거나 “내 UCC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듯이 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란 방식의 CC를 바탕으로한 사용자들의 성향을 나타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CC에 한정된 자료이므로, 국내 Web2.0트렌드의 정보의 질을 완벽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다. CC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자료들이 모두 한국 인터넷 컨텐츠의 질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분의 자료의 질에 대한
4-3. 아날로그 연습 - 삶의 추록과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
- 아날로그 Logic(Reverse Engineering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2006년의 활동들 중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기”, “인터넷을 끊고 살아보기” 같은 행동들은 20대들에게 매우 많은 즐거움과 삶을 되돌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해 주었다. 이것은 서론에서 밝혔던 아날로그의 “역발상”의 개념으로, 과거의 것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공학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Reverse Engineering이라는 방식을 통해 제품이나 기술을 Copy하면서 새로운 개발을 하기도 한다.
공학적 개념의 Reverse Engineering은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다르게 “아날로그 로직”은 “목적성 회복”의 개념에 가깝다. 발전의 논리 보다는 그 발전 논리의 타당성을 한번 더 살펴보고 가는 방식의 로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활, 행동 자체를 과거의 것으로 돌아가 봄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 사이에 매체를 통해 잊어버렸던 여러 단계의 목적들을 회복함으로 좀 더 이전에 다가왔던 목적들을 이해하게 된다.1) 전화는 우리에게 타인의 번호를 통해 기억하는 방식을 잊어버리게 만들었고, 언제든 연결할 수 있다는 기술을 가져다주었지만, 맨 처음 멀리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원초적 목적은 많이 퇴색했다.
부록의 내용들은 앞선 글과의 논리 구조를 벗어난 내용과 우리가 추구했던 방법론적인 개념을 정리했다. 아날로그 라는 것은 원래 디지털 신호 방식에 비해 주파수를 이용한 방식이며, 사람들의 많은 글이나, "나는 아날로그가 좋아"라는 표현의 글들에서 사용하는 "아날로그"는 디지털에 대비되는 아날로그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DSLR의 사용자와 SLR의 사용자들 사이에서 SLR사용자들이 "나는 아날로그가 좋아, 수동카메라와 필름이 있는 SLR이 좋아.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아날로그가 좋아"라고 얘기할 때의 아날로그는 앞에서 얘기하는 주파수 전달방식의 아날로그 개념을 벗어난다.
앞으로 우리가 하는 활동 혹은 개념들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그것은 공학에서 쓰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개념과 혼용되어 사용되기 시작하면무엇을 의미하는지가 혼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날로그를 하다." "아날로그 하다." "아날로그를 생각하다"이런 방식의 동사화된 표현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부터 쓰는 아날로그는
위의 예와 같은 동사화 표현을 통해 생성되는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자 만든 임의적인 의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왜 시작됐는지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이어령도 자신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디지로그란 말은 디지털 문화코드, 아날로그 문화코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지금 추구해야 할 방향을 아날로그 문화코드를 융합한 디지털 문화방향을 이야기한 것에 반해, 우리는 아날로그 문화코드 자체의 의미를 더욱 중요시 한다.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에 대한 생각에 대한 적용은 교육과 대학사회, 그리고 국가정책, 인문학, 인터넷, 경영학적 재구성 등 다양한 분야에 가능하다고 본다. 두 번째 날 논의했듯 대상을 넓게 잡고 가기 보다는 인문학분야에 한정해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좋은 개념들을 찾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했던 "핸드폰 사용하지 않기"라는 행동은 사실 디지털 디바이스 발전에 있어서,여러 단계의 목적과 결과들을 한꺼번에 거슬러 올라간 행동이었다.
즉 원래 개발자들의 로직은 항상 이런 방식이다. 목적이 결과를 낳고 새로운 목적을 위해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의 연속이다. 이 과정은 훨씬 길고 복잡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 세부적인 단계는 무수히 많고 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 거슬러서 역으로 올라가는 것이, 한 단계 정도의 거스름, 역 발상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디지털 디바이스들을 정리해서 놓았더니, 핸드폰을 갑자기 안 쓰는 행동은, 아래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목적1 : 원거리에 있는 사람과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
결과1 : 편지라는 인력을 사용한 의사전달, 혹은 비둘기를 통한 전달
목적2 :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도 의사전달하기 위해
결과2 : 전화기란 것이 발명 -> 전화망의 발달(연결지향, 유선망 발달)
목적3 : 전화기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도 의사전달 하기 위해
결과3 : 워키토키, 삐삐가 생겨남 ->무선망을 활용하기 시작
목적4 : 무선망 상태로, 전화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람.
결과4 : 핸드폰 기술의 발달, 실제 목소리로 무선상태에서 전화가 가능
목적 5 : 이미 칼라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휴대폰 인터페이스 상에서도 원색 배경을 원함
결과 5 : 흑백 -> 칼라 화면으로 대체됨
목적 6 : 인터넷 접속을 전화를 통해 하고 싶음
결과 6 : 변형된 형태의 웹 형태로 인터넷에 접속함-> 부가 서비스 확대
핸드폰은 이런 방식의 개발 로직을 통해, 엠피3도 넣었고, 사진기도 넣었고, TV수신장치(DMB)도 넣었고, 이제 곧 노트북에서 접속할 수 있는 똑같은 인터넷 접속 기능까지 부과할 예정이다.(Apple Phone) 내가 애플 폰을 주목하는 이유는, 여태까지는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었는데, 지금부터 인터넷과 똑같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핸드폰은 사실 휴대폰 사업자에게 비용을 부과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애플 폰으로 엠에센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그건 전화기로 엠에센 무선 음성 채팅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전화걸지않았도, 바로 접속해서 이멜 보내 놓고, 몇 시에 엠에센에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여러 단계로 되어 있는 단계를 의도적으로 되돌아 갔던 것이고, 여러 목적과 결과가 엉켜 있는 로직을 그냥 훌쩍 넘어 뒤로 돌아갔다. 그랬기에, MP3가 없는 핸드폰을 쓰거나, DMB가 안 되는 폰을 쓰거나, 흑백의 폰을 쓴다 한 들, 구체적이고, 커다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던 것에 반해, 여러 단계를 되돌아가면서, 전화나 편지를 하게 된 가장 원초적 목적으로 돌아가게 된 듯하다.
우리는 원초적 목적자체의 창구를 한동안 차단하거나, 결과 2~3의 낮은 단계의 유선전화를 사용함으로서, 좀더 원초적 목적에 다가갔던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원초적인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시간이 조금 들었던 것이지만, 우리는 연락을 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싶다는 낮은 단계의 목적을 의식한다. 평상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이것 저것을 하게 되면, 사실 핸드폰의 실제 목적보다는 목적 10단계 혹은 목적11단계가 더욱 의식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여러 단계를 뒤로 돌아가면서 우리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기를 개발할 때, 사람들은, 혁신 혹은 컨버전스라는 개념을 가져다 쓰지만 단계가 높아질수록 단순한 결합, 단순한 중복사용의 의미밖에 찾을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시간과 많은 개발 비용을 쏟지만, 향상되는 목적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삐삐에서 핸드폰이 상용화 되었을 당시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던 것과는 다르게, DMB서비스나 Show같은 서비스가 그렇게 빨리 사용자가 늘어나지 않았던 점은 이 사실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은 실제로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마케팅 혹은 시장 논리로 계속 사업들을 “드리대고” 있다. 강요하는 마케팅이 너무나 익숙한 한국시장이다.
이에 비해 애플폰은 높은 단계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전화와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은 목적의 격차가 컸기 때문에 충분한 Market Value를 갖게된다.
핸드폰을 중심으로 설명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 발상 혹은 거스름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목적과 결과에 따라 그 단계를 차곡차곡 거쳐서 만들어 진 것에 반해, 돈을 목적으로 한 발명 혹은 기술일수록, 이 보급 효과는 투자비용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날로그는 이런 기술을 막 자라는 의미보다는 그 목적을 좀더 공고히 할 수 있었으면 하자는 방식의 "아날로그 하자"이길 바란다.
이런 방식의 고민은 우리가 Season1.에서 했던 다른 방식에 적용해 보아도,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마음이 편하고, 혹은 즐겁게 나눌 수 있었던 점은 가장 근본적인 목적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비판 없이 사용하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지 했기 때문에, 현실의 추상적인 활동들은 더 높이 지향해야 할 목표도 거의 없었으므로, 이런 부분에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